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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성지순례 기행문 - 박용주 집사

신앙생활
Author
SHIN Young-kil
Date
2014-07-16 22:35
Views
1657
성지순례 기행문 - 박용주 집사

오랫동안 준비했지만 뭔가 내 맘엔 만족하지 못한 준비를 하고 떠난 성지순례였다. 떠나기 전날 박상균 집사님께서 부친상으로 출발 못하신단 연락을 받고 역시나 순조롭지 못하구나 하는 나름 타당성 있는 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저가 항공에 새벽 비행기 인데 약속에 늦는 사람도 있었고, 더군다나 그 성도님들이 짐까지 부쳐야 한다니 맘이 더 무거워지며 불안했다.
서둘러가며 비행기 타고 텔아비브 공항에 내리니 부친 짐도 하나 도착하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내 직감은 정확해 이번 순례는 순조롭지 못할 것이 분명해.” 라고.
가이드 해주실 전도사님 만나고 베들레헴 일정인 줄 알았는데 예루살렘으로 가신단다. 현지 목사님이 그리 스케줄을 짜 놓으셨다고 한다.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최종적으로 스케줄 확인 못한 내 탓도 좀 있고 해서 그냥 따랐다. 첫 식사를 하는데 종업원이 음료를 쟁반에 가져오며 권한다. 식사비에 포함되었다는 말에 거의 대부분이 싫든 좋든 콜라든 스프라잇이든 하나씩 받아 놓았다. 직감은 정확했고 아니나 다를까 개당 3 달러씩 계산을 하란다. 식사 후 커피 값까지 계산하니 첫날부터 예산차질이 우려 되었다.
전날 거의 밤샘을 하고 새벽 비행기타고 하루 일정 소화하고 예루살렘 야경도 궁금해서 택시 타고 시내 한 번 돌고 곤히 잠들고 깨어보니 아침 8시, 이미 출발 했어야 하는 시간이다. 고양이 세수에 아무거나 걸쳐 입고 짐 꾸겨 넣고 나가보니 다들 버스에서 기다리고 있다 나와 안사람만 20 분 늦었다. 역시 불길한 내 예감은 틀림없었다.
이틀째 일정이 시작되었다 강한 햇볕에 우리 16 명은 겟세마네, 기드론 계곡, 다윗 성, 시온 산 등을 걸었다. 또 걱정이 시작되었다. 저 집사님은 저러시다 곧 쓰러지실 텐데… 더 걱정스러운 건 전날 저녁식사에 목사님의 말씀이셨다. 이스라엘 청년 3명이 납치되었는데 팔레스타인 사람들 행위로 간주되고 있어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는 말씀이셨다. 안 그래도 안전이 이번 순례를 통해 가장 중요한 관점이라 보고 있던 내 머리는 복잡하기만 했다. 통곡의 벽에선 자연스럽게도 기도 속에 원망이 나왔다.
베들레헴에서의 숙박, 이름은 인터콘티넨탈 호텔이지만 저녁이면 철문이 모두 닫히는 요새와 같은 곳이었다. 아침에 출발하면서 보니 팔레스타인 관리지역이었고 곧 사복에 총을 든 두 군인이 그 지역에서 나오는 우리를 검문했다. 이스라엘 땅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엠마오, 가이사랴, 갈멜 산, 나사렛, 모두 태양에 노출된 채로 순례를 했다. 갈릴리 호수까지의 길은 멀었다. 갈릴리 호수는 그 생긴 모습 그대로 따듯하게 우리를 품어 주었다. 도착한 날 평온한 저녁식사를 하던 중 현지 이강근 목사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다음 일정으로 가게 되는 요르단 경비는 전체를 현금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가지고 있는 달러 현금은 부족한 상태였다. 밥을 먹으며 해결책을 생각했고 머리는 복잡했지만 닭고기는 맛있었다.
다음날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하셨다는 언덕 위의 팔복 교회,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을 유대인에게 복 받은 사람이라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에 비하면 우린 복만 받은 것이 아니고 팔자가 펴서 호강하는 신앙인 임이 분명한데 그래도 왠지 이 순례는 불안하기만 했다.
헬몬, 가이사랴 필립보, 베드로 수위권 교회, 등 감동스런 일정을 마치고 드디어 가장 걱정되던 요르단 일정이 시작된다. 국경에서 가이드 미팅하고 버스로 장거리 이동을 하면서 작년에 갔던 헝가리 집시마을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이 산다는 느낌을 받았다. 요르단을 가로질러 페트라에 도착하고 또 하루가 마감하는 순간이었다. 밀라노 사무실에서 버스 한 대가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기계고장으로 정지했다는 연락을 받고 성지순례 온 것이 잘못아닌가, 아차 싶기도 했다. 불안의 연속이었다.
경이로운 페트라를 반나절 보고 다시 차에 올랐다. 느보 산에서 요르단 너머 가나안 땅을 보면서 빨리 가고 싶단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그래야 빨리 집에 갈 수 있으니까. 왕의 대로, 아르논 계곡, 대자연을 감상하며 암만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대도시였고 궁금증 많은 나는 택시를 타고 야경을 보러 나갔다. 라마단이 시작되어서인지 이슬람사원에서 나오는 특유의 소리가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것 같았다. 라마단 기간이니 여행시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요르단 주재 한국대사관의 경고가 떠오르자 또 불안했다. 서둘러 택시를 타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가는 날이 왔다. 엄격한 국경 통과수속, 그래도 제일 먼저 수속을 밟아서 쉽게 통과할 줄 알았던 이스라엘 출입국 접수처에 어디서 온 건지 알 수 없는 팔레스타인 사람들로 인해 줄이 꽤 길었다. 한 사람당 이민가방을 서너 개는 가지고 있었고 더 중요한 건 줄이 줄어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급행료가 있다는 말이 생각이 났다. 형광조끼 입은 사람에게 다가가 물어본다. 코리안 투어리스트인데 저쪽에 서 있는 것이 맞냐고 왼손엔 보일 듯 말 듯 20 달러짜리 하나를 쥐고 일부러 그 손으로 우리 단체가 서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천천히 말을 건네어 보았다. 나보고 VIP냐고 되물어 보길래 일단 그렇다 대답했다. 왜냐하면 터번에 두루마리 입은 50 명의 현지인 뒤에 서있는 우리가 VVIP는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형광 조끼 입은 사람이 저쪽 그늘에 앉아 있던 흰 와이셔츠 입은 사람에게 다가가 뭐라뭐라 이야기 하니 그 셔츠 입은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멀리서 보면서 나도 줄로 돌아가 있었다. 내게 똑같이 물었다. “ VIP? “ 이번엔 자신 있었다. “YES, VIP.” 왜냐면 형광조끼 입은 사람이 이미 우리가 VIP임을 입증해 준거니까. 줄이 열리고 우리는 그냥 통과 되었다. 영문을 모르고 서 있는 현지인들에게 좀 미안한 생각은 들었지만 우리는 20달러짜리 VIP 였다.
그러나 다 통과된 게 아니었다. 입국 심사를 하는 창구가 남았다. 가이드는 많이 했어도 투어리더는 안 해본 나지만 그 상황에선 투어리더였다. 두 줄로 입국 심사를 받는데 우리 줄의 검사원은 무지 친절했다. 나보고 멤버가 다 들어갈 때까지 좀 기다리라 해서 기다렸고, 난 마지막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창구를 지나 나왔다. 분명 다 나왔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짐을 찾으러 서 있다가 알았다, 한 분이 아직도 심사창구에 잡혀 있다는 것을.
멀리 50 미터는 떨어진 입국 심사대 옆에서 손을 흔드는 집사님이 보였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안타까워 할 수 밖에 없었다. 여권을 확인한다는 이해가 안 되는 이유로 30여분의 시간 동안 붙잡혀 있다가 아무 해명도 듣지 못하고 심사대를 빠져 나오셨다. 빡빡한 일정에 30 분이면 적은 시간은 아니었다.
마사다, 쿰란 동굴, 그리고 젤 궁금했던 사해바다에 도착했다 얼굴에 기름진 흙을 바르고 바다에 둥둥 떠서 자연현상의 신기함에 또 한 번 놀랐다. 모래사장 위에 만들어진 공용 샤워기로 대충 바닷물과 기름 흙을 떼어내고 여리고로 향하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공항에서 뺏긴 시간도 있었고 사해의 신비함에 추가시간도 쓰고 해서 이미 시간은 많이 늦어 있었다. 게다가 몸도 끈적거리니 호텔로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거수에 붙여졌고 여리고는 다음날 아침에 잠깐 들리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마지막 날이라 저녁식사도 같이 하고 인사도 나눌 겸, 여리고 근교 호텔에 들리신 이목사님에게서 놀라운 이야길 들었다. 여리고에 갔으면 큰일날 뻔했다고…. 우리가 도착할 때 실종되었던 3 명의 이스라엘 청년이 살해된 채 발견되었고, 팔레스타인 소행이라 확신하는 이스라엘 측이 보복으로 팔레스타인 소년 한 명을 살해하면서 분위기가 악화되어, 여리고 시내는 데모대의 돌팔매질에 분위기가 심각하다는 말씀이었다.
여리고 일정은 취소하고 호텔에서 비교적 편안한 휴식을 취한 우리 성지순례단은 밀라노로 돌아오는 날 아침에 여리고 대신 광야를, 우리만 알고 있는 그 의미 있는 광야를 마지막으로 보고 텔아비브 공항에 도착했다. 처음부터 갖고 있던 내 불안한 직감은 공항에서도 들어 맞았다. 비행기가 공항 관제탑의 파업으로 딜레이를 계속했던 것이다. 김인희 집사님이 모두에게 사주신 맛있고 비싼 빵 덕분에 다행히 배는 고프진 않았지만, 2시간 이상을 연착하는 상황에 매우 당황스러웠다.
밀라노로 돌아온 지 일주일이 되었다. 돌아보니 내가 생각했던 불안한 직감은 우리의 순례 길에 있어서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내 직감은 시간차가 좀 있나 보다. 지금 우리가 다녀온 이스라엘은 전쟁 직전이라고 뉴스에서 연일 떠들어댄다. 인도해 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하며 전전긍긍하는 나의 직감이 쓸모 없다는 것과 부끄럽다는 것을 고백한다.

성지를 다녀온 지 일주일 후에, 밀라노한인교회 박용주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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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07-21 22:39
    마지막 반전이 인상 깊은 글이네요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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